버스가 정류장에 멈췄습니다.
승객이 아직 내리는 중인데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승객이 중심을 잃고 도로에 넘어져 다쳤습니다.
이런 경우 단순한 교통사고일까요?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승객이 안전하게 타고 내릴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은 채 차량을 운행하였다면 ‘승객추락방지의무위반’이 문제될 수 있고, 이로 인해 교통사고가 발생하였다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12대 중과실 교통사고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종합보험이나 버스공제에 가입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형사책임이 문제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버스에서 승객이 넘어져 다치기만 하면 모두 승객추락방지의무위반에 해당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대법원은 승객추락방지의무가 적용되는 범위를 구체적으로 제한하여 판단한 판례를 내놓은 바 있습니다.
오늘은 승객추락방지의무위반의 의미부터 12대 중과실 해당 여부, 실제 대법원 판례, 처벌, 형사합의 및 경찰조사에서 확인해야 할 사항까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승객추락방지의무위반이란?
도로교통법은 운전자에게 운전 중 타고 있는 사람 또는 타고 내리는 사람이 떨어지지 않도록 문을 정확하게 여닫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승객이 안전하게 타고 내릴 수 있도록 확인하고, 승객이 떨어질 위험이 없는 상태에서 차량을 운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 버스의 이른바 ‘개문발차 사고’입니다.
승객이 아직 버스에서 내리고 있는데 출입문을 닫거나, 출입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은 상태에서 버스를 출발시켜 승객이 넘어지는 사고가 대표적입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단순히 버스가 출발하면서 승객이 넘어졌다는 사실만이 아닙니다.
사고 당시 승객이 차량 안에 있었는지, 승차 또는 하차 중이었는지, 이미 하차를 완료한 상태였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합니다.
승객추락방지의무위반은 12대 중과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은 도로교통법상 승객의 추락 방지의무를 위반하여 운전한 경우를 이른바 ‘12대 중과실’ 중 하나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교통사고의 경우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거나 차량이 종합보험 등에 가입되어 있다면 일정한 요건 아래 형사처벌에 관한 특례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2대 중과실 사고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승객추락방지의무를 위반하여 피해자에게 상해를 입힌 사실이 인정된다면 종합보험이나 공제에 가입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형사절차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버스기사나 택시기사 등 운전자 입장에서는 경찰에서 ‘승객추락방지의무위반’으로 사고가 접수되었다면 실제로 12대 중과실에 해당하는 사고인지부터 정확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승객추락방지의무위반이 인정되는 요건
⑴ 운전자가 운전 중
운전자가 도로교통법상 ‘운전’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면서 승객 추락 방지의무를 위반하여야 합니다.
여기서 운전은 단순히 차량이 이동하고 있는 경우에만 한정되지 않고, 승객의 승하차를 위하여 차량을 정차시킨 상태에서 운행을 계속할 수 있는 상태에 있는 경우도 운전 중 상황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⑵ 승객이 승차중, 하차중
‘타고 있는 사람’ 또는 ‘타고 내리는 사람’이 대상입니다. 따라서 이미 차량에 탑승한 승객뿐 아니라, 차량에 오르거나 차량에서 내리는 과정에 있는 사람도 보호대상에 포함됩니다.
사고 당시 승객이 완전히 승·하차를 마쳤는지 여부가 성립의 핵심입니다.
특히 하차의 경우 하차를 완료하였는지 쟁점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승객이 두 발을 지면에 내딛었더라도 아직 균형을 잡지 못하고 신체 일부가 차량 안에 남아 있는 등 하차행위가 완료되지 않았다면, 그 상태에서 문을 닫아 승객을 넘어지게 한 행위는 승객 추락 방지의무 위반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반면 승객이 차에서 내려 도로 상에 발을 딛고 선 뒤에 일어난 사고는 승객의 추락방지의무를 위반하여 운전함으로써 일어난 사고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버스 운전자가 피해자의 치맛자락이 출입문 사이에 끼어 있음에도 그대로 출발하여 피해자가 넘어진 사건에서, ‘이 사건에 있어서와 같이 승객이 차에서 내려 도로 상에 발을 딛고 선 뒤에 일어난 사고는 승객의 추락방지의무를 위반하여 운전함으로써 일어난 사고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할 것이다’라고 판단하였습니다(96도3266). 위 사건에서 피해자는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이미 차에서 내려 두 발을 도로 위에 완전히 딛고 인도로 올라가려던 중이었습니다.
⑶ 추락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은 경우
운전자가 추락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주의의무 위반이 있어야 합니다.
운전자는 승객의 승차 또는 하차가 끝났는지 확인하고, 출입문이 완전히 닫혔으며 승객의 신체나 소지품이 문에 걸리지 않았는지 확인한 후 출발하여야 합니다.
※ 승객추락방지의무위반으로 인정될 수 있는 예
● 승객이 승차 중인데 출입문을 닫고 출발한 경우
● 승객이 하차 중인데 문을 닫은 경우
● 승객의 신체 또는 옷이 문에 걸린 상태에서 출발한 경우
(옷이 걸린 경우는 승하차 완료여부를 구체적으로 따져보아야 합니다)
● 출입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았는데 출발한 경우
● 승객이 차량 계단이나 승강구에 있는 상태에서 출발한 경우
● 승객의 양발이 지면에 닿고 균형을 잡기 전 차량을 움직인 경우
● 승차하려는 승객을 확인하지 않은 채 문을 닫고 출발한 경우
※ 승객추락방지의무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 예
● 이미 차량에서 완전히 내린 후 넘어진 경우
● 단순히 문 닫힘 경고음 때문에 급히 하차하다 넘어진 경우
● 차량 내부에서 급출발·급제동으로 넘어진 경우
● 화물차의 적재함에서 작업하던 인부가 하차하던 중에 추락한 경우
● 승객이 문을 열어 하차하다 추락한 경우
승객추락방지의무위반 처벌은?
승객추락방지의무 위반으로 교통사고를 발생시켜 피해자에게 상해를 입혔다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에 따른 형사책임이 문제될 수 있습니다.
다만 12대 중과실에 해당한다고 해서 모든 사건에서 동일한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처벌 수위를 판단할 때에는 피해자의 상해 정도, 골절이나 수술 여부, 후유장해 가능성, 운전자의 과실 정도, 사고 당시 승객의 위치, 사고 발생 직후 구호조치 여부, 피해회복 여부, 자동차보험 또는 공제 가입 여부, 피해자와의 형사합의 여부,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 동종 교통범죄 전력 등 여러 사정이 고려될 수 있습니다.
형사합의 필요할까?
“피해자와 합의하면 처벌받지 않나요?”
승객추락방지의무위반이 12대 중과실에 해당하는 경우 피해자와 합의하여 처벌불원서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형사사건이 당연히 종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형사합의가 의미 없는 것도 아닙니다.
피해자의 상해가 중한 사건에서는 피해회복 여부, 형사합의 여부 및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가 처분이나 양형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고려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피해자의 상해 정도가 상당하다면 보험처리와 별도로 형사합의를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형사합의를 함에 있어서는 자동차보험 또는 버스공제를 통한 손해배상과 형사합의금의 관계, 운전자보험의 교통사고처리지원금 지급 요건, 합의서 문구까지 함께 검토하는 것이 좋습니다.
경찰조사를 앞두고 있다면?
승객추락방지의무위반 사건에서는 운전자의 진술보다 객관적인 영상이 훨씬 중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확인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차량이 실제로 움직이기 시작한 시점
② 출입문이 닫힌 시점
③ 승객의 첫 번째 발과 두 번째 발이 차량에서 내려온 시점
④ 사고 당시 승객의 몸이 차량 내부에 남아 있었는지
⑤ 승객의 옷이나 가방 등이 문에 끼었는지
⑥ 승객이 손잡이를 잡고 있었는지
⑦ 운전석에서 승객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는지
⑧ 차량이 급하게 출발하거나 제동했는지
특히 앞서 살펴본 대법원 판례처럼 승객이 하차 중이었는지 아니면 이미 하차를 완료한 상태였는지가 쟁점이라면 영상의 몇 프레임이 결론을 좌우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사고 직후 버스 내부 CCTV, 외부 CCTV, 블랙박스 등 영상자료를 신속하게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승객추락방지의무위반, ‘사고 결과’보다 ‘사고 순간’이 중요합니다.
승객추락방지의무위반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승객이 넘어졌는가?” 그 자체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차량이 움직이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 승객은 어디에 있었는가?”입니다.
승객추락방지의무위반 사건은 사고 당시 불과 몇 초의 상황에 따라 법적 평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승객추락방지의무위반으로 경찰조사를 앞두고 있다면, 우선 ‘정말 12대 중과실에 해당하는 사고인지’부터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12대 중과실 해당 여부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상해 정도와 형사합의의 필요성, 운전자보험, 자동차보험·공제 및 민사상 손해배상 문제까지 함께 검토하여 꼼꼼히 대응방향을 정하시길 바랍니다.